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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리운 걸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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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친구들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이 세상에 없더라도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는 친구들아! 너희가 왜 이 글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다들 너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되지만, 한 달 만에 처음 드는 생각이니까 괜찮을 것도 같아.
알다시피 나는 지금 홍콩에 있어. 나도 내가 홍콩에 있고,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 여기 오기까지 모든 게 불확실함으로 가득했거든.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국제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2년을 함께해 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정말 고마워. 특히… 이름을 언급할 순 없지만, 여기 쓰도록 동기를 줬던 중국 출신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새로운 나라, 새로운 땅에서 많은 일을 겪는 중이야. 공부하느라 바쁘게 살던 내가 완전히 혼자, 자유롭게 지내는 건 처음이라 더욱 감격스러워. 한국과 중국에서 살 때는 진정한 나 자신, 그러니까 숨김이나 보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살기 어려웠어. 주변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있었고(내가 그걸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닫힌 사회의 특성상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를 요구받는 상황 자체가 있었던 것 같아. 여기에도 닫힌 사회가 없진 않아. 이를테면 한국인들끼리 ‘우리가 남이가!’ 하며 어울리는 분위기 같은 것들. 그래도 이제는 완전히 혼자 사니까 더 자유로울 수 있어! 나는 나니까, 다른 사람의 납득이 꼭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돼. 다만 정작 내가 무슨 일을 겪는지 자세히 말하지는 못한다는 점이 모순적이긴 하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 자체에서 오는 희열이 있어.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대학교라는 곳을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운 환경이더라! 해커톤에서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많이 만난 뒤 느낀 건데, 홍콩대는 다른 홍콩 학교들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느낌이 강해. 그래서 나를 떨어뜨린 유일한 대학교인 과기대에도 오히려 감사하고 있어… 당시 국제학교를 0.9년밖에 다니지 않았던 나로서는 스펙이 부족했었고, 만약 붙었다면 경거망동해서 홍콩대에 오지 못했을 테니까. 홍콩대는 정말 괜찮은 학교야. 홍콩에서 사는 생활 자체가 늘 좋은 건 아니지만. 단점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학생도 많은데 관광객까지 무작정 몰려오다 보니, 사람 수에 비해 학교는 좁아서 그런가 봐.

홍콩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음식이 너무 비싸고 입맛에 잘 맞지 않는 건 문제지만… 나머지는 다 괜찮은 것 같아. 첫날부터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야. 한국인 친구도 생겼는데, 그 친구는 나와 일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공감되는 부분이 정말 많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의지할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느껴.
아무리 힘들어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여행으로 하루를 채우다 보니 우울할 틈이 없더라. 바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나는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다음 주가 리딩 위크라 단기 방학인데, 아마 여행을 가서라도 시간을 꽉 채우려고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 위험해질 것 같거든…
다들 너무 그립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 과거에만 매달릴 순 없는 것 같아. 넷플릭스에서 본 시리즈에서, 내 상황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던(디테일만 빼면 거의 똑같더라…)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I'm ready to stop missing everybody. I'm ready to start experiencing new things. I want my own adventure. - Kitty Covey
이젠 그리워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길게. 그리웠어. 다들 응원해줘서 고마워!